중국공산당은 지난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제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개최했다. 당 중앙조직부가 지난 7월 1일 발표한 공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당원 숫자는 8875만8000명. 11월 5일 현재 기준으로는 당원 수가 9000만명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약 30만분의 1에 해당하는 376명이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이 중앙위원들 전체가 모여 당에 관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회의가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이고, 중전회는 대체로 1년에 한 차례씩 열린다. 중앙위원들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조국(曺國) 사태에 이어 정국 키워드로 등장시킨 화두가 이른바 ‘공수처’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를 줄인 ‘공수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현재 2개의 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돼 있다. 2개의 공수처안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을 비롯한 의원 12명이 지난 4월 26일 발의한 이른바 ‘백혜련안’과 권은희 의원을 비롯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4월 29일 발의한 이른바 ‘권은희안’이 있다. 후일의 역사를 위해 백혜련안 발의자 12인은 박범계·송기헌·이종걸·표창원·박주민·이
미 NBA(농구협회) 휴스턴 로케츠 팀의 커미셔너 대릴 모레이(Morey)는 지난 10월 4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홍콩을 지지한다(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 그러자 중국 내 모든 TV 채널을 장악하고 있는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지난 10월 8일 “스포츠 채널에서 NBA 프리시즌 경기 중계를 즉각적으로 잠정 중단하고 NBA와의 모든 협력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CCTV는 지난 10월 10일 상하이(上海), 12일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베이징(北京)시를 동서와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만나는 곳에 지금은 고궁(故宮)이라고 부르는 자금성(紫禁城)이 있고 그 남쪽 광장 한복판에 ‘마오쩌둥(毛澤東)기념관’이 있다. 무료로 입장하는 마오기념관에는 지금도 중국 ‘인민’들이 줄을 서서 입장해 기념관 안에 전시된 마오의 시신을 둘러본다. 밀랍으로 부패방지 처리된 마오의 시신은 기념관 지하에 보관돼 있다가 하루에 한 번씩 ‘일과시간’이 되면 지상으로 올라와 인민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오는 10월 1일로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알리던 1949년, 천안문
2014년 12월 22일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중국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장 링지화(領計劃·당시 58세)가 “엄중한 기율위반으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12년 11월 당 최고 권력자로 선출된 이후 2년 남짓 흐른 때였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 권좌에 오른 후인 2014년 3월에는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 시절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정치국원을 겸임하던 쉬차이허우(徐才厚)에 대한 부패 혐의 조사를 시작했고, 6월에는 후진타오 당 총서기 시절 중국공산당의 최고
1958년 5월 5~23일 열린 중국공산당 제8기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에서 마오쩌둥(毛澤東) 당시 주석은 이런 연설을 했다.“앞으로 5년 이내에 우리가 강철생산량 4000만t을 달성한다면 우리는 7년 이내에 영국을 따라잡을 수 있고, 다시 8년을 노력하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한 해 전인 1957년 중국 전체의 강철생산량은 535만t톤이었다. 마오가 “5년 이내에 강철생산량 4000만t톤을 달성한다면…”이라고 말한 것은 “전 인민이 나서서 대약진의 정신으로 나아가 ‘판이판(飜一番·2배로 만들기)’을 이룩한다면 1958년에는
러시아 폭격기 TU(투폴레프)95 2대와 조기경보 통제기 A50 1대가 독도 우리 영공을 침범하자 우리 공군이 비상 출격해 300여발을 경고 사격하는 일이 지난 7월 23일 벌어졌다. 고노 다로(河野太) 일본 외무상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우리의 고유 영토로, 영공 침해를 한 러시아에 대해서 우리나라가 대응해야 하지 한국이 조치를 한다는 것은 우리 정부 입장과 양립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범상치 않은 때 중국 국무원은 ‘신시대 중국 국방백서’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중국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인 위화(余華)는 1960년생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벌어졌던 문화혁명을 어린 눈으로 지켜본 세대다. 1966년부터 1976년 사이 10년 동안 중국대륙 전역에 불었던 문화혁명이라는 태풍은 마오쩌둥(毛澤東)이 국내 정치에서 불리한 입장으로 몰리자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사실상의 정치투쟁이다. 마오쩌둥은 중고교생들과 대학생들에게 ‘홍위병(紅衛兵)’ ‘혁명의 순수성을 지키는 전위대’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기성 권위를 때려부수도록 부추겼다. 기득권자들을 때려 죽여도 되는 신나는 권한을 부여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월 20일부터 이틀간 평양에 가서 김정은을 만났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됐으나 그동안 평양 방문을 하지 않았다. 전임자들의 사례를 보면 당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한 차례 평양 방문을 하는 것이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의 관례였다. 시진핑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도 그랬고, 장쩌민(江澤民)도 그랬다. 1989년 천안문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은 천안문사태가 시작되던 그해 4월 평양을 방문했었다.그러나 시진핑은 당 총서기로 선출된 이후 평양 방문길에 나서
올해는 일본 군국주의가 패망한 지 74년,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66년이 되는 해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주축이 되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10월 1일) 이런 때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뜬금없이 1898년에 출생해 1958년에 사망한 김원봉이라는 인물을 “약산 김원봉 선생”이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 그 바람에 우리 사회에서 뜻밖에 격렬한 좌우 대립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 가운데 김원봉에 대한 표현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
“천안문사태 30주년,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자가 ‘사태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민해방군 소속 전직 기자였던 이 내부자는 그날 베이징에서 있었던 유혈진압을 정치적인 금기로 삼아서는 안 되며 중국 사회 전체가 이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촉구했다.”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천안문(天安門)사태’ 30주년을 일주일 앞둔 지난 5월 28일 이런 제목의 베이징발 기사를 실었다. 1989년 6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베이징(北京)시 중심부 천안문광장에서 벌어진 중국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를 중국 공산당 지도자
“우리 중국은 거듭해서 밝혀둔다. 미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이 무역전쟁으로 거둘 수 있는 것은 ‘쑨런하이지(損人害己·남에게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손해를 입힘)’일 뿐이다. 우리 중국은 무역전쟁을 생각해본 일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절대로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둔다. 만약 우리나라로 찾아와서 전쟁을 건다면, 반드시 끝까지 상대해줄 것이라는 점도 밝혀둔다. 중국은 지금까지 어떤 외부압력에도 굴종한 일이 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익을 지켜낼 결심이 서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 외교안보수석과 주중 한국대사를 지낸 정종욱(79) 전 서울대 교수가 회고록을 냈다. 제목은 ‘정종욱 외교비록’. 본인은 서문에서 “기록의 기본 자료는 핵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청와대를 떠나면서 가지고 나온 여러 권의 노트”라고 밝혔다. “내가 북한이 NPT 탈퇴를 발표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시점은 대통령이 (옥포조선소에서 있었던 최초의 국산 잠수함 최무선호의) 진수식을 마치고 조선소 구내의 오찬장으로 걸어가던 도중이었다.”그의 회고에 따르면, 1993년 3월 12일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발표할 당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이런 언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중앙아시아 순방을 떠나기 전인 4월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나와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4월 16일 이 일을 서울발로 전하면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제멋
중국 국영 중앙TV ‘채널4’ 국제뉴스 기획 프로그램에 ‘포커스투데이(今日關注)’라는 하루 30분짜리 고정물이 있다. 그날 전 세계에서 일어난 국제뉴스 가운데 중국이 가장 관심을 가진 뉴스를 전문가들을 출연시켜 좌담식으로 해설하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 28일 포커스투데이는 ‘일(日) 자위대 4대 기지가 하나의 선을 이루다, 일본은 제1도련(島鏈·Island Chain)을 봉쇄할 생각인가’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일본 방위성이 오키나와(沖繩) 본도에서 남서쪽으로 300㎞쯤 떨어진 해역에 있는 아마미오(奄美大島)섬과
베트남은 1979년 중국과 벌인 국경 전쟁에서 승리했다. 2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한 달이 채 안 걸린 전쟁에서 중국은 베트남에 ‘교훈’을 주지 못하고 패배, 후퇴했다. 미국 자료를 바탕으로 한 우리 계산으로 당시 중국은 10개 군 30만명의 병력을 동원했으나, 정규군 10만명에 민병조직 5만명을 동원한 베트남에 패배했다. 물론 중국 측 입장은 다르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에 따르면 “베트남의 끊임없는 국경 도발과 이웃 캄보디아에 대한 침공을 ‘바로잡기’ 위해 20만의 병력을 동원해서 작전을
노영민 전 주중 한국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낙점돼 2개월간 비어있던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한민국 대통령 특명 전권대사’ 자리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의 비판이 쏟아졌다. 노영민 비서실장 역시 주중 대사로 일하던 지난해 6월 김정은의 3차 방중이 있던 날 자신의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돼 야당들로부터 쓴소리를 들은 바 있다. 비서실장으로 내정돼 귀국한 지난 1월 8일에는 김정은이 4차 방중을 위해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돼 주중 한국대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북한
“우리 중국은 조선과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우리는 조선과 미국 간의 제2차 정상회담이 순리대로 진행되어 적극적인 성과를 거두어,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지구적인 평화 실현에 공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월8일 김정은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될 것이라고 발표하자, 사흘 뒤인 11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발표한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변함없는 중국의 입장”이다.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
지난 11월 24일 치러진 대만 중간선거 결과 ‘신삼민(新三民)’이 등장, 대만의 앞날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이 12월 9일자로 보도했다. 전 세계의 화교들을 주 독자로 하는 아주주간은 베이징(北京) 편도, 타이베이(臺北)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태도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매체다.아주주간이 말하는 대만 ‘신삼민(주의)’의 등장은, 전통적으로 민주진보당(民進黨)의 가장 중요한 지지 기반인 남부 가오슝(高雄)시 시장 선거에서 민주진보당이 대만 정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1월 30일~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GDP 총액 규모로 1·2위 국가가 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미 무역전쟁이 불붙고 있는 가운데 만나는 트럼프·시진핑의 ‘트시 미팅(特習會)’에서 과연 또 다른 불꽃이 튈 것인지, 돌연한 화해라는 극적 반전(反轉)이 이뤄질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베이징(北京)의 분위기는 극적 반전을 기대하는 편이지만 워싱턴의 분위기는 또 다른 불꽃이 튈 것이라는 예